우리 나라 최초의 괴물 퇴치자
악룡(惡龍) 퇴치담(退治譚)은 톰슨(S. Thompson)의 이른바 'type 300'에 정리되어 있는 영웅담(英雄譚)이다. 톰슨은 유럽의 전 지역과 중근동의 일부 및 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의 일부 그리고 아시아의 일부 지역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조사, 보고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악룡 퇴치담'이 손진태(孫晋泰) 선생에 의해 '지하국대적제치설화(地下國大賊除治說話)'로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악룡 퇴치담'은 가히 세계적인 민담(民譚)이라 부를 만하다.
우리 나라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악룡 퇴치담'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의 '진성여왕 거타지조'에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의 여러 아들 가운데 막내아들 양패(良貝)가 여왕의 명을 받들고 궁사(弓士) 50여 명과 함께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의 일이다. 배가 곡도(鵠島)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 일 동안 꼼짝도 못하고 묶여 있었다. 그리하여 양패(良貝) 일행이 그 섬에 있는 신지(神池)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날 밤 양패(良貝)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궁사(弓士) 한 명을 섬에 남겨 두도록 부탁했다.
이튿날 양패(良貝)는 부하들의 제의에 따라 50개의 나무조각에 각 궁사(弓士)들의 이름을 써서 물 속에 던졌더니, 거타지의 이름이 쓰인 나무조각만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양패(良貝) 일행은 거타지만을 남겨 놓고 당나라를 향해 떠났다.
섬에 홀로 남겨진 거타지가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신지(神池)의 노인이 나타나 그에게 사미(沙彌)를 퇴치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 노인은 서해의 해산(海神)이었다. 노인의 설명에 의하면 사미(沙彌)는 매일 해돋을 무렵에 하늘로부터 내려와 주문을 외우면 해신(龍)의 가족들이 물 위에 뜨게 되고, 그러면 사미(沙彌)가 간장을 빼먹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가족이라고는 용신(龍神)의 내외와 딸이 하나 있으니, 부디 처치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거타지는 노인의 청을 받아들이고 숨어서 그 괴물을 기다렸다. 동틀 무렵이 되니 과연 큰 괴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늙은 용이 물 위로 떠오르고, 그 괴물이 용의 간을 빼내려 하였다. 그 때 거타지가 놓치지 않고 활을 쏘아 그 괴물을 맞추자, 괴물은 한 마리의 여우로 변하여 땅 위에 떨어졌다. 그후 거타지는 당나라로 가서 후한 대접을 받고, 신라로 돌아와 용신(龍神)의 딸과 함께 결혼하여 잘 살았다. 기록에 의거하는 한, 거타지는 우리 나라 최초의 괴물 퇴치자였던 셈이다.